[전자신문] 대법원, “실제 자금 이동이 기준”…금융당국 ‘펀드 관리’ 제재 뒤집어

사진=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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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자산을 관리하던 은행이 마감 과정에서 장부 금액을 조정한 일을 두고 금융당국이 불법 거래라며 제재에 나섰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펀드 돈이 옮겨가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기준을 분명히 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최근 한 은행이 펀드 관리 과정에서 내부 장부를 정리한 행위가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금융위원회가 은행에 내린 업무 정지 처분을 정당하다고 본 2심 판결을 뒤집었다.

금융위는 은행이 여러 펀드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장부상 금액을 조정한 점을 문제 삼았다. 마감 시점에 실제 입출금 금액과 시스템상 금액이 맞지 않자 일부 계정 잔액을 조정했는데, 금융위는 이 과정에서 펀드 간 돈이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불법 여부를 가르는 기준을 장부가 아니라 실제 돈의 이동으로 봤다. 대법원은 “법에서 금지하는 거래는 실제로 돈이 옮겨가거나, 그 결과 누군가의 권리와 의무가 바뀌는 경우”라며 “이번 사건은 장부 조정 결과로 펀드의 대여금 채권이 늘거나 줄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은행은 장부 조정 이후에도 조정 전 금액을 기준으로 펀드에 이자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금융당국의 제재 범위에 명확한 기준을 세워주었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수탁은행의 펀드 관리 행위를 폭넓게 문제 삼아 온 흐름에 시동을 건 셈이다. 옵티머스 사태에서는 다른 펀드의 돈을 끌어다 환매 자금으로 쓰는 불법 행위가 있었다.

이번 판결은 은행과 자산운용사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수탁은행은 마감 과정에서 단순 조정이나 시스템 처리까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과도한 내부 통제와 보수적인 업무 처리를 이어왔다. 자산운용 시장에서도 펀드 관리 리스크에 대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의 제재 기준이 지나치게 넓게 해석될 경우, 은행들이 펀드 수탁을 꺼리거나 관련 업무를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펀드 관리 제재 기준이 명확해졌다”며 “수탁 업무 전반의 법적 리스크가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두호 기자 walnut_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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