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제3차 SFS포럼] “혁신 생태계 조성의 열쇠는 'RWA 완화'… 정부 신호 중요해” 1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3차 회의가 23일 서울 중구 을지타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유재수 간사,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종원 KDI 초빙연구위원,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류정혜 과실연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좌장),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이 '정부와 시장에서 바라본 한국 금융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6/23/news-p.v1.20250623.36882952ad62469da96407b2a07417df_P1.jpg)
류정혜 과실연 AI 미래포럼 공동의장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조차 국내 평가 가치가 낮아 미국 등 해외로 법인을 이전(플립)하는 사례가 많다”며 “미국 투자자들이 현지 법인에만 투자하려는 경향과 세제상 불이익이 맞물려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이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시기에는 금융자본이 스타트업을 지탱해야 하는데, 자금 압박 속에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철웅 신한은행 감사위원은 위험가중자산(RWA)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처럼 은행이 매년 수천억 원을 상생 자금으로 쓰기보다는, 혁신펀드에 투자하고 여기에 정부 재정이 함께 투입되는 방식으로 자본 비율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서 “인공지능(AI)처럼 국제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정부가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금융자본이 혁신펀드를 통해 투입된다면 창업과 생태계 형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간 은행이 조성하는 벤처투자조합이나 신기술투자조합 등 벤처펀드는 바젤III 기준에 따라 일괄적으로 400%의 RWA 규제를 적용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금융감독원이 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벤처펀드에도 최대 100% 수준까지 낮아진 RWA가 적용될 수 있게 됐다. 다만, 비상장주식 등 일부 자산에는 여전히 400%의 가중치가 유지되는 등 세부적으로는 차등 적용되고 있다.
유재수 간사는 “과거에는 벤처투자 등 위험성 자산에 대해 은행의 RWA가 150%(바젤 II)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400% 규제가 적용되면서 은행의 투자 담당 임원들 사이에서 할 일이 없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며 “이 같은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자금이 생산적 투자보다는 가계부채나 부동산 금융에 쏠리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모험자본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장제도 전반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 간사는 “현재는 상장 진입 문턱이 지나치게 높고, 상장 폐지도 어렵게 설계돼 있어 성장 가능성이 낮은 기업이 시장에 남아 오히려 시장 신뢰를 해치고 있다”며 “상장은 보다 쉽게, 상장 폐지는 보다 유연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이 모험자본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윤종원 KDI 초빙연구위원은 “모험자본은 본질적으로 자본시장에서 다뤄야 할 영역이 맞다”면서도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금융 수요는 자금·투자·융자 성격이 혼합돼 있어 일정 부분 은행이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는 관련 역할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은행 내부에서 직접 담당하기보다는 별도의 자회사 등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간접적으로 모험자본을 다루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벤처 투자가 은행권에서 소극적인 이유로 △정책금융에 대한 높은 의존도 △RWA(위험가중자산) 규제 적용 대상을 들었다. 그는 “현재도 낮은 금리로 정책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구조이고, 실제로 은행이 아니더라도 금융지주에 속한 증권사나 캐피털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 RWA 규제를 동일하게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금융위원회 TF 회의에서 RWA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은행뿐만 아니라 은행 계열 증권·캐피털사도 더 적극적으로 모험자본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금융이 본질적으로 서비스업인 만큼 내수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현실적인 진출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분석이다.
이효섭 위원은 “홍콩, 싱가포르, 일본,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 금융회사들은 이미 해외 수익 기여도가 높지만, 국내 은행의 해외 수익 비중은 아직 10%에도 못 미친다”며 “높은 펀딩 비용, RWA 규제, 글로벌 금융허브 전략의 부재 등 복합적인 제약 요인으로 인해 해외 진출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철웅 김사위원은 “해외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은 RWA 규제”라고 지적하며, “국내에서는 여신 확대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ROC(자본수익률)를 기대할 수 있지만, 해외 진출 시에는 높은 RWA 부담으로 수익성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지 금융당국의 비일관적인 규제와 자본규제까지 더해져, 국내 금융회사에 이중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종원 위원은 금융산업 자체의 체력 부족을 더 근본적인 문제로 진단했다. 그는 “상품 판매력만으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며 “제조업 기반 중소기업은 현지 법인을 설립해 해외 진출하지만, 국내 금융사는 금융상품 제조능력 등 해외에서 통할 기본 실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현재 금융위기 대응에서 정부와 은행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윤종원 위원은 “정부의 개입 여력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며 “이제는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결국 시장에 맡겨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정리되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과거처럼 정부나 금융당국이 은행을 압박해 자금을 회수하거나 유도하는 방식도 더는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철웅 감사위원은 “과거에는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가능했지만, 은행 여신중 가계여신이 40% 이상 확대된 상황에서 같은 방식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도 중앙은행이 CP(기업어음)와 국채 시장에 직접 개입해 시장을 안정시켰듯, 지금 한국도 그와 유사한 단계에 와 있다”며 “현재 금융구조에서는 한국은행이 CP·회사채·국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안정 정책 외에는 뚜렷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재수 간사도 “정부가 기업금융 기반에서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거나 부실을 떠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결국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한 시장 안정 조치가 유일한 대응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