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여러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고려아연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영풍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쟁이 시작된 1년 전과 비교하면 애초 MBK·영풍이 내건 명분은 모두 힘을 잃었다는 평가다. 남은 것은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는 MBK·영풍의 공격과 고려아연 방어 뿐이다.
1년 동안 벌어진 것은 무려 24건의 소송. 주총 결의 취소 청구, 가처분 신청이 줄줄이 이어지며 회사는 소송전에 휘말렸다. 그 사이 고려아연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사주 매입에 나섰고, 차입금은 10배나 불어났다. 부채비율은 단숨에 15%대에서 80%대로 치솟았다. MBK의 도발이 남긴 상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조직 내부의 균열이다. 임직원 10명 중 7명 이상이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고용불안을 이유로 이직을 고민한 비율도 절반을 넘겼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구조조정과 근로조건 악화를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경영권 분쟁이 직원들의 삶까지 파고든 것이다.
그렇다고 MBK와 영풍이 명분을 챙긴 것도 아니다.
MBK는 10년 전 인수한 홈플러스를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먹튀’라는 비판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쏟아졌다. 롯데카드 해킹 사고는 관리 부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거버넌스를 개선하겠다던 세력이 오히려 부실과 혼란을 양산한 셈이다.
영풍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석포제련소는 환경오염 문제로 58일간 조업이 중단됐고, 오염토양 정화명령 미이행으로 추가 제재를 앞두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은 1500억 원을 넘어섰다. 아연 편중 구조 속에서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고려아연 배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됐다.
문제는 여전히 갈등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MBK·영풍은 지분율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격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무모한 공세는 오히려 정치권과 여론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와 롯데카드 부실, 영풍의 환경 리스크는 이 연합의 신뢰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결국 남은 것은 탐욕의 민낯뿐이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법적 분쟁이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저해하고 경영진 의사결정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중 갈등 속 전략광물 등 한미협력과 공급망 역할마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려아연은 방산 필수 소재와 전략광물을 공급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만약 해외 자본이 지배적인 MBK가 경영권을 쥔다면 국가핵심기술 유출과 공급망 붕괴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 일본, 유럽이 기간산업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제도는 허술하다. 국회에서 사모펀드 규제법 발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반면 고려아연은 위기 속에서도 반전을 만들어냈다. 2024년 상반기 매출은 7조6,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진기록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전략광물 다변화 전략이 빛을 발했다. 미중 갈등 속에 안티모니, 게르마늄 같은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독보적 입지를 굳히며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록히드마틴과의 MOU 체결은 그 상징적 장면이다.
![[전자신문] 고려아연-영풍 M&A 갈등 1년, 명분은 희미해지고 남은건 상처뿐 1 고려아연 긴급 기자회견이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렸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4/10/22/news-p.v1.20241022.064335b0acba4e9795093f02d90f3b62_P1.jpg)
적대적 M&A를 막아내느라 고려아연의 차입부담은 과거 대비 한층 심화됐다. 2024년 말 별도기준 총차입금은 4조713억원으로 2023년 말 4,107억원과 견줘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15.8%에서 83.2%로 67.4%포인트 상승했고 총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을 뜻하는 차입금의존도 역시 4%에서 33.2%로 29.2%포인트 올랐다.
최윤범 회장을 비롯해 고려아연 현경영진은 일단 경영권 수성에 성공했지만, 불리한 지분구조에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적대적M&A 부담은 여전히 상당하다. 호실적을 통한 기업가치 개선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비용과 배당정책 등 내년 주총을 앞두고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일단 시장에선 심각한 업황 부진 속에서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능력에 점수를 주고 있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 7조6582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상반기 매출액을 기록했다. 기존 제련사업 가운데 전략광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데다 MBK·영풍 측이 2022년 말 최 회장이 취임 이후 세운 신사업 전략인 ‘트로이카 드라이브’ 사업 부문을 지속적으로 공격해왔지만, 자원순환을 비롯해 신사업 부분에서 최근 회사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커지면서 관련 비판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영풍은 환경 리스크 뿐 아니라 생산 품목이 아연에 편중된 점, 전자부품 계열사의 사업성과 부진 등이 겹치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1,71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2%(3,217억원) 줄었다. 영업손실은 150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적자 규모가 3.5배가량 확대됐다.
정치권에서는 MBK를 상대로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고려아연 M&A에도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