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황성진의 ‘고대 사상가, AI를 만나다’] 마키아벨리가 AI를 쓴다면 가장 먼저 잘라냈을 변명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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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AI를 쓴다면 가장 먼저 잘라냈을 변명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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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출처=황성진
출처=황성진

요즘 회의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AI가 그렇게 분석했습니다.” “데이터가 이렇게 나왔어요.” “시스템 추천이 이거였거든요.”
그럴듯하게 들린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반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말들 속에는 공통적으로 빠진 게 하나 있다.
‘나’가 없다.
결정은 분명히 일어났다. 그런데 결정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AI가 말했고, 데이터가 보여줬고, 시스템이 추천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여기서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이 세 가지 문장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흐린다.
“AI가 그렇게 분석했다”는 판단 자체를 외주화한다. 마치 내가 생각한 게 아니라 AI가 생각한 것처럼 말한다.
“데이터가 이렇게 나왔다”는 숫자 뒤에 숨는다. 숫자는 객관적이니까, 나는 그저 숫자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시스템이 추천했다”는 알고리즘에 책임을 넘긴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시스템이 골라준 거라고 말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셋 다 ‘내가 결정했다’는 문장을 피해간다.
마키아벨리는 500여년 전에 이미 이 문제를 꿰뚫어봤다.
‘군주론’ 25장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운명은 우리 행위의 절반을 지배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상황을 탓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절반은 당신 몫이다. 이 말을 지금 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결과가 나빴을 때 “AI가 그렇게 말해서요”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자기 몫의 절반을 포기한 것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냉혹한 권모술수의 대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군주론’에서 강조한 virtù(역량)는 도덕적 선함이 아니라,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역량이었다. 그리고 24장에서 그는 나라를 잃은 이탈리아 군주들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실패를 운명 탓으로, 시대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자. 마키아벨리는 그런 군주에게 미래가 없다고 봤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팀장이 실패한 프로젝트 보고서를 들고 회의실에 들어간다.
“AI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진행했는데, 시장 반응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내가 이 방향을 선택했다’는 고백은 사라졌다.
창업자가 투자자 앞에서 말한다.
“AI 예측 모델이 수요를 과대평가했습니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델을 믿기로 한 건 누구였는가? 검증 없이 따르기로 결정한 건 누구였는가? 모델이 틀렸다고 해서, 그 모델을 선택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AI는 틀려도 사과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 판단이 틀렸을 때, 책임은 누가 지는가?”
AI는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생각을 확장하고, 선택지를 넓히고, 판단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AI는 결과를 대신 책임지지 않는다. 결과가 좋으면 내 공이고, 결과가 나쁘면 AI 탓? 이건 파트너십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마키아벨리가 가장 한심하게 본 군주는 무능한 자가 아니었다. 운명에 기대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자였다. 실패 앞에서 운명을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상황을 탓하는 자. 그는 그런 군주에게 미래가 없다고 봤다.
AI 시대에 늘어난 건 ‘결정의 자동화’가 아니다. ‘책임을 미루기 좋은 환경’이다. 예전에는 변명하려면 최소한 사람 이름이라도 대야 했다. “김 과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하면, 김 과장에게 확인이라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알고리즘이 있고, 데이터가 있고, 시스템이 있다. 얼굴 없는 핑계가 늘어났다.
AI는 판단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다만 판단을 숨길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를 제공할 뿐이다. 그 핑계를 쓸지 말지는 여전히 인간의 선택이다.
출처=황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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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변명을 만드는 건 AI가 아니다. 변명을 선택하는 건 인간이다.
오늘 하루, 이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최근 내가 내린 결정 중에 ‘AI가 그렇게 말해서’라고 설명한 게 있는가? 그 결정의 진짜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AI는 선택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를 대신 감당해주지는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경고가, 지금 다시 울린다.
(주)비즈마스터 황성진 의장
‘AI 최강작가’와 ‘AI 최강비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AI를 활용한 콘텐츠 창작과 업무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한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생각을 확장하는 대화 파트너’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전파 중. 서경대학교 ‘AI 퍼스널브랜딩’ 비학위과정 주임교수 역임.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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