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관광객 세금으로 곰 포획까지”…日 출국세 인상의 ‘황당 사용처’

일본에서 도로를 걷는 어미 곰과 아기 곰. 사진=연합뉴스
일본에서 도로를 걷는 어미 곰과 아기 곰. 사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 개선 등을 명목으로 올린 출국세가 당초 취지와 거리가 있는 분야에도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곰 포획부터 벚나무 해충 퇴치, 문화재 관련 시설 조성까지 관광객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불분명한 사업에 외국인들이 낸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24일(현지시간)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부터 출국세를 기존 1000엔(약 8700원)에서 3000엔(약 2만6000원)으로 올렸다. 세율이 한꺼번에 세 배로 높아지면서 정부는 올해 해당 세목을 통해 약 1300억엔(약 1조1270억원)의 세입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810억엔가량 증가한 규모다.

출국세는 일본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국적과 관계없이 내야 한다. 다만 일본인에게 돌아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자국민 부담분에 해당하는 164억엔을 활용해 여권 발급 비용을 낮췄다. 이에 따라 여권 수수료 인하에 쓰인 금액을 제외하면 약 646억엔의 추가 재원은 사실상 외국인 이용객이 주로 부담하는 구조가 됐다.

일본 정부는 인상된 세금을 관광객 급증에 따른 지역 혼잡 문제를 해소하고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편성된 예산을 들여다보면 관광 진흥과 직접적인 관계를 찾기 어려운 사업도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눈에 띄는 사례는 야생 곰 관리 사업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곰 포획과 개체 수 및 생태계 조사 등에 국제관광여객세 재원을 배정했다. 전체 사업비 62억엔 가운데 60억엔(약 520억원)이 해당 세금으로 마련된다.

곰 출몰과 인명 피해는 관광객뿐 아니라 일본 현지 주민들의 안전과도 밀접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일본 환경성은 해외 방문객 역시 곰으로부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관광객에게도 관련 사업의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벚나무를 해치는 외래 해충 방제에도 같은 재원이 들어간다. 일본 각지에서는 벚나무 등을 갉아먹는 외래종 ‘쿠비아카츠야카미키리’에 의한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관련 사업에 필요한 6억엔 전액을 출국세로 충당하기로 했다. 환경성은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의 벚꽃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문화 분야에도 출국세가 활용된다. 국보와 중요문화재 보수 및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국립문화재수리센터 설계비를 비롯해 만화 원고 등을 보존하는 미디어예술 내셔널센터 정비비, 다카마쓰즈카 고분 벽화를 전시하기 위한 시설 설계비 등이 대상에 포함됐다.

국제관광여객세는 법적으로 국제관광 진흥과 여행 환경 개선 등 특정 목적에 사용하도록 정해진 목적세 성격의 세금이다. 그동안 곰 피해 대응처럼 관광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사업은 소득세나 법인세 등 일반적인 세원을 통해 재정을 충당해왔다. 하지만 이번 세율 인상 이후 관련 사업까지 출국세의 적용 범위에 들어오게 됐다.

일본 정부 안에서도 이 같은 재원 운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재무성 관계자를 인용해 교육비 부담 경감이나 휘발유 관련 세제 조정 등으로 재정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출국세 인상분을 다른 분야에 돌려쓰게 된 측면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다나카 히데아키 메이지대 교수는 국제관광여객세의 사용 범위가 법률상 관광 진흥과 관련된 분야로 제한돼 있다면서 곰 피해 대책이나 벚나무 해충 관리까지 포함하는 것은 법 취지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외국인 납세자는 일본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도 논란의 배경으로 꼽혔다. 다나카 교수는 일본 국민이 부담했어야 할 비용을 외국인 관광객이 낸 세금으로 보전하는 방식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논란이 단순히 관광객에게 부과되는 세금의 적정성을 둘러싼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재정 부담을 외국인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세입을 확보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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