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이란·후티에 맞은 사우디, 트럼프가 결정타 날려…美에 840조 바치고도 최악 안보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AP 연합뉴스
후티 반군에 美 직접 타격 요청했지만 거절
미·이란 전쟁의 장기화 속에서 친(親)이란 세력의 전방위적 도발과 핵심 안보 우방인 미국의 미온적 태도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사우디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4년간 6000억달러(약 840조원) 규모의 대미 무역·투자 확대를 약속하고, 수조 원대 방산 패키지와 투자펀드 조성을 추진하는 등 미국과의 경제·안보 밀착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막상 이란 전면전의 여파로 본토와 핵심 원유 수송로가 마비되는 상황에 처하자 워싱턴으로부터 기대했던 안보 우산을 제공받지 못하면서 사우디 왕정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의 야히야 사리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사우디 공군 전투기 대다수가 주력 배치된 카미스 무샤이트의 ‘킹 칼리드 공군기지’를 향해 수십 발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사우디군이 예멘 내 반군 거점을 50여 차례 공습한 데 대한 보복 조치다.

이와 함께 후티 반군은 홍해 남부의 전략 요충지인 그레이터·레서 하니시 섬을 전격 장악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 북쪽 160km 지점에 위치한 이 제도는 사우디의 유일한 대체 원유 수송로인 홍해 항로를 압박하는 핵심 요충지다.

해상 봉쇄로 인한 타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에너지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사우디 유조선 ‘시드르’호 공격 등 민간 선박에 대한 도발이 잇따르면서 사우디의 아시아행 원유 수출량은 지난 6월 하루 340만 배럴에서 8월 12만 8,000배럴로 급감했다.

육상 우회 수송망 역시 동시 다발적 공격에 뚫렸다.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드론 폭격으로 아라비아반도를 횡단하는 1200km 길이의 ‘동서 송유관’ 핵심 가압장이 파손돼 가동이 전면 또는 부분 중단됐다.

안보 위협은 이슬람 성지 인근까지 침투했다. 사우디 민방위국은 15일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카와 상업 도시 제다, 타이프 일대에 공습 경보를 발령했다.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성지 메카에 위협 경보가 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대규모 경제적 투자를 통해 대미 관계를 공고히 했음에도 미국의 현실적인 지원은 미비하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연쇄 통화에서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군의 직접 타격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군사고문단 배치 등 간접 지원에 선을 긋고 있다.

미 국방부 감찰관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 역시 중동 내 8개국 기지 시설 수백 곳이 파괴되고 50대 이상의 항공기 손실 및 SM-3, PAC-3 등 핵심 요격미사일 재고 고갈을 겪고 있어 새로운 전선을 열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마이클 랫니 전 주사우디 미국대사는 “사우디는 막대한 대미 투자에도 불구하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 안보 지원을 받지 못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는 사우디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외교적 타협안마저 연기된 가운데 예멘 현지에서는 사우디가 비밀리에 보유해 온 중국산 DF-15A 단거리 탄도미사일 잔해가 발견되는 등 사우디의 극비 전략무기 투입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어용 요격미사일 재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사우디의 독자적 군사 대응 수위 격상은 후티의 고도화된 무기 체계에 맞서 핵심 에너지 인프라를 추가 보복 위험에 노출시키는 외통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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