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5. 기후테크, ‘본질’로 승부하라
2026년 03월 04일
[IT동아]
대한민국 기후테크가 그릴 새로운 전략 지도
기후 위기는 이제 도덕적 호소를 넘어 글로벌 경제의 거대한 무역 장벽이자 국가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2026년 현재, 기후테크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어야 할 ‘글로벌 통화’와 같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국제 무대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국제 표준이라는 공용어로 매끄럽게 번역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다. 아무리 번역이 유창해도 통화 자체가 지닌 가치, 즉 기술의 압도적인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통화는 결국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가 기꺼이 가치를 지불할 만큼 강력한 ‘진짜 기술’에 집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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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의 효율성을 넘어 전략적 시너지로: 분류 체계의 고도화
정부가 제시한 클린, 카본, 에코, 푸드, 지오테크라는 5대 분류 체계는 기후테크 육성을 위한 국가적 의지를 명확히 하고, 부처별 전문성에 기반한 효율적인 지원을 가능케 했다. 다만 이러한 체계가 혁신의 현장에서는 개별 부처의 관할 영역에 맞춘 수직적 구조로 작동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 기술을 담아내기에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현재의 5대 분야는 부처별 고유 업무 영역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부처 간 협력이 필수적인 신기술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거나 기업들이 행정적 기준에 맞춰 사업의 본질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간 쌓아온 부처별 전문성을 바탕으로, 영역 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통합적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의 정밀함과 독일의 유연성: 제조 강국들이 보여주는 시사점
우리와 유사한 산업 구조를 가진 일본과 독일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술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일본은 ‘2050 탄소중립 그린 성장 전략’을 통해 해상풍력, 수소, 배터리 등 14개 중점 분야를 구체적으로 특정했다. 이는 국가 자원을 선택과 집중에 따라 투입하여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민간의 과감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다.
반면 독일은 특정 품목을 규정하기보다 사회 전체의 시스템 전환을 목표로 하는 ‘섹터 중심’의 접근을 취한다. 각 부문별 탄소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되 이를 달성하는 기술적 수단은 시장의 자율에 맡김으로써, 철강이나 화학 같은 전통 제조업의 공정 자체를 바꾸는 혁신적인 시스템 통합 기술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전략적 가치를 선별하는 3대 필터: 국가적 역량의 집중
이제 대한민국도 부처별 관리의 틀을 넘어, 기술의 실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전략적 필터를 제안한다. 첫째, 과학적으로 검증된 탄소 저감 기여도다. 단순한 수치 개선을 넘어 기가톤 단위의 감축을 실현할 수 있는 파괴적 혁신을 발굴해야 한다. 둘째, 산업적 파급력이다. 반도체나 미래 전력망 등 국가 기반 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기술인가를 따져야 한다. 셋째, 글로벌 주도권 확보 가능성이다. 우리의 탄탄한 제조 역량을 결합해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범부처가 힘을 모을 때, 우리 기후테크는 로컬 문법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강력한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결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전략 지도의 업데이트
길을 닦기 위해 삽을 들기 전, 우리가 쥐고 있는 지도가 변화된 지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만약 그 지도가 부처별 영역이라는 칸막이에 갇혀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주저 없이 지도를 업데이트해야 할 때다. 기후테크에 대한 접근을 행정적 관리를 넘어선 ‘국가 전략적 가치’로 재정립해야 한다. 제조업이라는 강력한 엔진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녹색 심장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지혜를 모아 혁신의 우선순위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본질적 기술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할 때, 대한민국의 기후테크는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도 가장 신뢰받는 ‘글로벌 기후 통화’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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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으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 분야에서 3년 연속 스탠포드대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기후 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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