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10년 전 알파고와 겨뤘던 이세돌, 인공지능과 손잡은 이유

[IT동아 김예지 기자] 10년 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대결은 여전히 회자된다. 대중에게 인공지능의 첫 데뷔와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경기는 1승 4패로 마무리됐으나, 그가 거둔 1승은 AI를 상대로 인간이 거둔 최초이자 마지막 승리로 바둑 역사에 남았다.
AI의 등장은 초기에는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영화 ‘Her’에서도 그랬듯 사람들은 AI와 교감하는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곧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가 확산됐다. 사람들은 ‘AI에 대체되지 않는 직업’을 검색하며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이세돌 교수가 인핸스의 AI OS를 기반으로 AI 바둑 모델을 만드는 모습 / 출처=IT동아
이세돌 교수가 인핸스의 AI OS를 기반으로 AI 바둑 모델을 만드는 모습 / 출처=IT동아

그러나 기업용 에이전틱 AI 스타트업 인핸스(Enhans)는 9일 서울 포시즌스에서 개최한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이러한 고민이 무의미함을 보여줬다. 과거 알파고와 사투를 벌였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세돌 교수는 이번에는 AI와 마주 보는 대신 나란히 앉아 파트너로서의 모습을 선보였다.

말 한마디로 바둑 모델 제작…AI OS 시연

이번 행사에서 이승현 인핸스 대표와 이세돌 교수는 생성형 AI를 넘어 실제로 행동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AI 에이전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음성 명령만으로 AI 에이전트가 역할을 분담해 실시간 웹 검색부터 기획서 작성, 코드 배포까지 완수하는 멀티 에이전트 협업 과정이 공개됐다.
AI OS의 PM 에이전트가 앱 기획을 위해 리서치 및 분석을 진행하는 모습 / 출처=인핸스
AI OS의 PM 에이전트가 앱 기획을 위해 리서치 및 분석을 진행하는 모습 / 출처=인핸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즉석에서 회의록을 작성했으며, 별도 코딩이나 설정 없이 대화만으로 AI 바둑 모델을 구축했다. 시연에 활용된 AI OS는 앤스로픽의 ‘클로드(Claude)’를 기반으로 작동했다. AI는 대담 내용을 온톨로지(Ontology)에 저장한 뒤, PM(기획) 에이전트에게 전달했다. 앱 기획 맥락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리서치한 후, 디자인 에이전트는 ‘나노 바나나 2’ 등을 활용해 UI 시안을 도출했다. 기획부터 배포까지 전 과정이 단 30분 만에 완료됐다.
반신반의하던 이세돌 교수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도출되자 놀라움을 표했다. 완성된 모델과 직접 대국을 펼치면서, 그는 “AI가 너무 어렵게 둔다”, “한 수 물러도 되느냐”고 농담을 던지며 “10년 전에도 느꼈지만 인간이 AI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둑 교육 기능도 시연됐는데, 가르치는 역할이 인상적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이세돌 교수가 AI OS를 활용해 만든 AI 바둑 모델 / 출처=인핸스
이세돌 교수가 AI OS를 활용해 만든 AI 바둑 모델 / 출처=인핸스
특히 바둑 교육 기능에 대해 “진입 장벽이 높은 바둑의 특성상 AI가 선생 역할을 해준다면 저변 확대와 사고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AI OS는 이세돌 교수의 취향을 파악해 최저가를 비교한 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서 아이돌 가수의 앨범을 직접 구매하며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세돌 교수는 AI가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개발 여건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러한 형태의 OS가 있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이며, “AI 시대에는 일자리가 사라지기보다는 업무의 형태가 변화하고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핸스의 핵심 기술: 온톨로지와 CUA

인핸스 뉴욕 타임스퀘어 옥외광고 / 출처=인핸스
인핸스 뉴욕 타임스퀘어 옥외광고 / 출처=인핸스
이번 AI 바둑 모델을 만든 ‘AI OS’를 개발한 인핸스는 글로벌 엔터프라이즈를 대상으로 에이전틱 AI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인핸스는 삼성전자, LG전자, 오늘의집 등 국내외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인핸스의 핵심 기술은 사람과 사건의 관계를 체계화한 ‘온톨로지’와, 실제 컴퓨터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실행 엔진 ‘CUA(Computer-Using Agent)’다. 이승현 대표는 “B2B 환경에서 AI의 실수는 치명적”이라며, “온톨로지 기술을 통해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방지하고 결과물의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승현 대표는 “현재 AI OS를 구성하는 핵심 기능인 웹 검색, 쇼핑, 기획, 디자인, 코딩 등은 이미 ‘커머스 OS’에 통합됐고, 향후 전체 시스템은 지속 고도화될 것”이라며, 개인용 서비스에 대해서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출시 일정을 앞당길 용의가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시점은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인핸스는 2025년 5월 팔란티어의 스타트업 펠로우십에 선정된 바 있으며, 이번 행사에는 앤스로픽,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거물들이 스폰서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인간의 한 수에 담긴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이승현 대표, 이세돌 교수와 인핸스 임직원의 모습 / 출처=IT동아
이승현 대표, 이세돌 교수와 인핸스 임직원의 모습 / 출처=IT동아
이세돌 교수의 메시지는 앞으로의 AI 전망을 관통한다. 그는 “AI가 바둑을 잘 두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이 직접 두는 바둑 한 수에는 감정과 스토리가 담겨 있다”며 인간 고유의 가치를 강조했다. AI가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인간의 예술이 무의미해지지 않는다. AI와의 협업을 통해 확보한 시간으로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사고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결국 인간과 AI의 협업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힌다. 이제 기술의 초점은 바둑 대결의 승자를 가리는 것을 넘어 어떤 가치를 함께 창출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이세돌 교수는 “AI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를 둔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AI가 못하는 인간만의 경험을 가지고 AI와 협업한다면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달라진다. AI가 할 수 없는 영역, 즉 인간의 한 수 한 수에 담긴 의미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10년 전 알파고 대국이 인간과 AI 대결을 열었다면, 오늘은 인간과 AI의 공존을 알리는 시작점이 됐다. 앞으로 10년 뒤 AI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수를 두느냐에 달려 있다.
IT동아 김예지 기자 (y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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