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퇴직금 절반 넣고, 일주일새 1000만원 날려”…영원히 오를 줄 알았던 ‘미친 증시’에 당했다

25일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WSJ “세계에서 가장 미친 주식시장…
시장이 ‘공포의 놀이기구’로 변했다”
개인투자자 상승장 믿었다가 손실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증시로 떠올랐던 한국 주식시장이 불과 수개월 만에 ‘미친 증시’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극심한 변동성에 휩싸였다.

지난해 코스피는 76% 급등하며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의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도 1년 만에 13위에서 5위로 뛰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AI 반도체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들도 빠르게 시장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상승의 속도가 빨랐던 만큼 추락도 가팔랐다. 코스피는 지난 6~7월 약 6주 동안 40% 가까이 급락했고, 이 과정에서 약 2조500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후 저점에서 약 20% 반등했지만 급등락은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한국 증시를 “세계에서 가장 미친 주식시장(The World’s Craziest Stock Market)”이라고 표현하며 시장이 ‘공포의 놀이기구’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급락의 충격은 개인투자자들에게 특히 크게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에 투자자들이 몰렸고, 계속되는 상승세에 평소 주식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투자자들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승장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서울의 한 회계사는 SK하이닉스 주가가 단기간에 약 40% 오르자 레버리지 ETF에 약 4000만원을 투자했다. 이후 시장이 급락하면서 투자금의 약 69%가 사라지고 약 1200만원만 남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주식 수익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고점이라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지만 결국 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퇴직금도 시장으로 향했다. 한 음향 엔지니어는 퇴직금의 절반을 반도체주에 투자했다가 일주일 만에 약 1000만원을 잃었다. 그는 당시 시장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주목받은 것은 레버리지 투자다. 지난 5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출시되면서 투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추종하는 상품인 만큼 상승장에서는 수익을 키울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 역시 빠르게 확대된다.

출시 직후 투자자가 몰려 관련 웹사이트가 접속 장애를 겪을 정도였지만, 반도체주 상승세가 꺾이자 상황은 급변했다. AI 수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흔들렸고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증시 급락은 정치적 부담으로도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자본시장 개혁과 증시 활성화를 추진해온 가운데 시장이 급락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의 대응을 둘러싼 책임론도 커졌다.

금융당국은 신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승인을 보류하고 거래에 필요한 현금예탁금 기준을 높이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측은 현재 시장을 “건전한 투자가 아니라 도박판이고 카지노”라고 표현했다.

다만 한국 반도체 기업의 장기 전망까지 어둡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부 글로벌 투자자들은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높은 수익성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보여준 것은 한국 증시의 극단적인 변동성이다. 지난해 76% 급등했던 코스피가 6주 만에 40% 가까이 급락했고, 레버리지 투자는 상승장에서의 기대를 하락장에서 막대한 손실로 바꿔놓았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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