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수염’이 美 선거판 표심 흔든다…콧수염에 반응하자 경쟁하듯 턱수염 길러

왼쪽은 공화당 후보 스티브 힐턴, 오른쪽은 공화당 후보 채드 비안코. 사진=AP 뉴시스
왼쪽은 공화당 후보 스티브 힐턴, 오른쪽은 공화당 후보 채드 비안코. 사진=AP 뉴시스
460만 캘리포니아주 인구의 표심이 ‘수염’에 흔들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후보가 수염 모양과 양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히틀러의 등장 이후 미국 정치권에서 짙은 수염은 오랫동안 금기시돼 왔지만, 최근에는 거친 남성성과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수염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의 변수 가운데 하나로 후보들의 수염 스타일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유력 후보인 공화당의 채드 비안코 후보는 짙은 콧수염을 내세우며 지지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경쟁자인 공화당의 스티브 힐턴 후보도 이에 맞서듯 최근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수염 경쟁은 후보 간 설전으로까지 번졌다. 비안코 후보는 “힐턴은 강해 보이기 위해 외모를 바꾸고 수염을 기른 것”이라며 “자신처럼 수염을 기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비꼬았다.

이에 힐턴 후보는 비안코의 콧수염이 만화 캐릭터처럼 우스꽝스럽다고 반박했다. 또 자신의 수염은 휴가 기간 면도를 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자란 것이라며, 오히려 유권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5%가 호감을 표시했다고도 밝혔다.

미국 정치에서 수염은 단순한 외모 요소를 넘어 상징적 의미를 지녀왔다.

펜실베이니아대 역사학 박사인 숀 트레이너는 2015년 발표한 논문 ‘권력을 위한 단장(Groomed for Power)’에서 이러한 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19세기 초 미국 사회에서 긴 수염은 일탈과 광기, 부도덕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861년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후 수염은 인간적이고 친근한 지도자의 상징으로 인식됐고, 1889년 취임한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까지 공화당은 잇따라 ‘수염 대통령’을 배출했다.

당시에는 흑인들이 면도·이발업을 주도했는데, 일부 백인 상류층이 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발소 방문을 꺼리면서 스스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수염의 이미지는 다시 변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피델 카스트로 등 강한 인상을 남긴 독재자들이 수염 또는 독특한 수염 스타일과 연관되면서 정치인들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깔끔하게 면도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1934년 재임 중 사망한 주지사 제임스 롤프 이후 수염을 기른 주지사는 사실상 등장하지 않았다.

또 1960년 미국 대선 TV 토론에서 리처드 닉슨이 존 F. 케네디에게 밀린 이유 중 하나로, TV 화면에 비친 닉슨의 거뭇한 수염 자국이 거론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다시 달라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중심의 스타트업 문화가 확산하면서 복장과 외모에 대한 규범이 느슨해졌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이에 따라 수염이 자유분방함과 반체제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요소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힐턴의 덥수룩한 수염을 두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턱수염”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예비선거는 6월 2일 실시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힐턴 후보가 면도한 얼굴의 민주당 후보 하비에르 베세라와 선두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공황 시기 이후 약 92년 만에 ‘수염 주지사’가 탄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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