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특집. 충전하면 이름이 바뀌는 전극
2026년 07월 20일
[IT동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기술의 중심에는 전기화학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의 심장부에 있는 전극을 부르는 이름은 정작 우리말에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용어가 개념을 정확히 담지 못하면 교육에서는 오개념으로, 산업에서는 기술 문서의 오역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가장 익숙한 지점에서 시작해 보자.
배터리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양극재’와 ‘음극재’다. 전기차 한 대의 원가를 좌우하는 핵심 소재이니, 이름을 모르고 지나가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영어로 옮기면 각각 cathode material, anode material이다. 우리말의 ‘양(陽)’이 영어의 cathode(캐소드)에, ‘음(陰)’이 anode(애노드)에 붙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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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의 정의는 어떠한가. anode는 산화 반응이 일어나는 전극이고, cathode는 환원 반응이 일어나는 전극이다. 전극의 이름은 그 전극이 (+)인지 (−)인지가 아니라, 전극 표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IUPAC은 이 용어들이 극성이 아니라 전극 반응 및 전자 흐름 방향과 관련된 개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름이 뒤집히는 전극
리튬이온전지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분명해진다. 이 전지는 흑연계 전극과 리튬 전이금속 산화물계 전극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전 중에는 흑연계 전극에서 산화가 일어나므로 anode이고, 산화물계 전극에서 환원이 일어나므로 cathode다. 그런데 충전하면 반응 방향이 뒤집힌다. 흑연계 전극에서 환원이 일어나 cathode가 되고, 산화물계 전극에서 산화가 일어나 anode가 된다.
(※편집자 주: 리튬이온전지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 이차전지이므로, 충전과 방전에 따라 산화·환원 반응의 방향이 바뀌며 IUPAC 기준의 anode와 cathode 명칭도 서로 바뀐다.)
물리적으로 전극은 그대로다. 소재도, 위치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충전이냐 방전이냐에 따라 그 표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그러므로 anode와 cathode는 애초에 고정된 부품 이름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는 IUPAC 정의의 결함이 아니라, 이차전지의 가역성이 그 정의에 정직하게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만약 ‘양극재는 cathode 소재’라는 산업계의 등식을 고수하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충전하는 순간 양극재가 anode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표기에 대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전극의 기능(산화·환원)과 전위의 상대적 높낮이라는 서로 다른 기준의 개념이 한 단어 안에 뒤섞인 데서 비롯되는 논리적 모순이다.
무엇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해법은 새 용어를 발명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있는 말들을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배치하는 데 있다. 필자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을 제안한다.
첫째 기준은 기능이다. anode와 cathode는 산화와 환원이라는 반응에 따라 붙는 이름이므로, 한국어로는 ‘애노드(산화전극)’와 ‘캐소드(환원전극)’가 적절하다. 작동 상태에 따라 바뀌는 것이 정상인 이름이다.
둘째 기준은 전위이다. positive electrode와 negative electrode는 두 전극 사이의 상대 전위로 구분되며, 작동 상태와 무관하게 물리적 전극을 일관되게 가리킨다. 흑연계 전극은 충전이든 방전이든 언제나 negative electrode이고, 리튬 전이금속 산화물계 전극은 언제나 positive electrode다. 한국어 ‘양극’과 ‘음극’은 바로 이 자리에 놓여야 할 말이다.
셋째 기준은 극성 표지다. (+)와 (−)는 전극에 붙는 이름이 아니라 단자의 극성을 나타내는 기호일 뿐이다. 게다가 이 기호와 기능 이름의 대응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방전할 때는 애노드가 (−) 쪽이지만, 충전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할 때는 애노드가 (+) 쪽이 된다. 부호만 보고는 그 전극에서 무슨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세 기준을 분리하면 ‘양극재’와 ‘음극재’도 굳이 폐기할 필요가 없다. 두 단어를 positive electrode와 negative electrode에 대응하는 명칭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국제 배터리 소재 문헌에서도 방전 상태를 기준으로 cathode material, anode material이라는 약식 표기가 널리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은 업계의 편의적 관행이지 IUPAC의 기능 기반 정의를 대체하는 재정의는 아니다.
용어는 도구다
이 제안이 왜 중요할까? 배터리 업계는 ‘양극재·음극재’라 쓰고, 특허 문헌은 같은 전극을 ‘정극·부극’이라 쓴다. 연료전지나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을 다루는 국내 문헌에서는 ‘애노드·캐소드’와 ‘양극·음극’이 한 편의 글 안에 나란히 등장하기도 한다. 같은 대상을 두고 분야마다 다른 이름이 통용되는데, 정작 그 이름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붙었는지는 합의되어 있지 않다.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번역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이차전지나 가역 고체산화물 전지처럼 같은 전극이 작동 모드에 따라 산화와 환원을 번갈아 맡는 시스템까지 겹치면, 학생은 개념을 두 번 익혀야 하고 엔지니어는 기술 문서를 두 번 검증해야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애초에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그런 혼동을 피하려 했다는 점이다. 1834년 마이클 패러데이는 윌리엄 휴얼의 제안을 받아 anode와 cathode라는 낯선 그리스어 조어를 도입했다. 당시 통용되던 ‘positive pole’과 ‘negative pole’이라는 이름이 전극을 전위의 부호로 못 박아 버려, 검증되지 않은 가정을 과학적 사고에 밀어넣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호 대신 그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이 용어들이 동아시아에 들어오면서 다시 ‘양극’과 ‘음극’이라는 부호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패러데이가 세운 기준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그 기준에 맞는 한국어 이름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그 오랜 혼돈을 끝낼 때가 아닌가 싶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IT 동아]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특집. 충전하면 이름이 바뀌는 전극 2 출처=전남대학교](https://it.donga.com/media/__sized__/images/2026/7/20/11e631930a6c4b5e-thumbnail-1920x1080-70.jpg)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을 받아 해당 분야의 세계적 연구기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에너지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3년 연속 스탠퍼드대학교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선정되었으며,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기후·에너지 솔루션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환경보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6년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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