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것은 끊기지 않는 전기다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2026년 09월 29일
[IT동아]
햇빛이 좋은 봄날, 전남의 어느 태양광 발전소가 출력을 줄이거나 가동을 멈춘다. 고장이 나서가 아니다. 바람이 잘 부는데 풍력 발전기의 날개가 서기도 한다. 전기는 만들 수 있는데, 그 전기를 받아줄 수요나 보낼 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출력제어라고 부른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거나 송전망 용량이 모자랄 때, 전력계통이 무너지지 않도록 발전량을 강제로 줄이는 조치다.
![[IT 동아]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것은 끊기지 않는 전기다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1 재생에너지, 송전망, 반도체 공장을 한 장면에 담은 모습. 반도체 산업의 핵심은 발전량보다 안정적인 전력 전달에 있다 /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https://it.donga.com/media/__sized__/images/2026/9/29/ac45fe50a60b47f0-thumbnail-1920x1080-70.jpg)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호남권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2023년 2일에서 2024년 27일, 2025년 82일로 늘었다. 호남권에서 계통 연결을 기다리는 발전설비도 2025년 10월 기준 2.47기가와트로, 전국 접속대기 용량의 약 63퍼센트가 호남권에 몰려 있다. 올해 5월 무안과 신안을 잇는 송전망이 준공돼 약 190메가와트의 접속대기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호남의 계통 병목은 여전히 크다.
그런데 같은 호남권에 초대형 전력 소비시설을 짓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광주 군공항 자리에 조성될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이하 호남반도체)다. 지역에 대규모 전력 수요처가 생기면 남는 전기를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전기를 만드는 일과 보내는 일
발전은 전기를 만드는 일이고, 송전은 그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보내는 일이다. 둘 다 전기를 다루지만, 필요한 설비가 전혀 다르고 갖춰지는 속도도 다르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송전탑과 전선을 이용하는 345킬로볼트 장거리 가공송전망은 입지 선정부터 준공까지 약 9년이 걸린다. 이런 시차는 출력제어가 늘어나는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송전망에 발이 묶이는 것은 발전소만이 아니다. 전기를 쓰려는 쪽도 마찬가지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계통 제약 때문에 2030년까지 세계에서 건설이 계획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약 5분의 1이 연결 지연 위험에 놓여 있다고 본다. 발전설비가 충분하더라도 필요한 전력을 계통에 제때 연결하지 못하면 대규모 수요시설의 가동은 늦어질 수 있다.
그래서 대형 전력 소비시설의 입지를 볼 때는 발전설비의 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전기가 그곳까지 언제, 어떤 경로로 도착할 수 있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그러나 특정 시간에 전기가 남는다고 해서 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언제나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제때, 안정적으로
반도체 공장에는 충분한 전기가 제때, 안정적으로 들어와야 한다. 세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을 대신하지 못한다.
첫째는 양이다. 얼마의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 호남반도체의 경우 2028년 말까지 1단계로 3.1기가와트를 공급하고, 팹(반도체 생산공장) 증설에 맞춰 최종 6.3기가와트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 정부와 지자체, 한전, 기업의 전력공급 협약 이후 구체화됐다. 정부는 한빛원전과 서남권 재생에너지, LNG 발전 등을 활용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전력 수급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구상을 밝혀 왔다.
둘째는 전달이다. 필요한 전력을 산업단지까지 보낼 선로와 변전설비를 제때 갖출 수 있는가. 1단계 공급을 위해 345킬로볼트 신장성-신광주 송전선로에서 분기해 산업단지까지 약 23킬로미터를 지중선로로 잇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다른 단거리 지중송전망 사업들을 두고 착공 전 절차에 약 1년, 공사에 약 3년이 걸린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호남반도체 선로는 2027년 6월 착공해 2028년 12월까지, 약 1년 반 만에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지중 송전사업은 인허가와 도로점용, 주변 개발, 사업계획 변경 등에 따라 일정이 늦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정 평가가 가능한 지중 송전사업 242건 가운데 146건의 준공 목표가 당초보다 늦춰졌다. 이 통계는 2028년 말 공급 목표에도 일정 리스크가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품질과 신뢰도다. 반도체 공장이 특히 민감하게 따지는 조건이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는 순간적인 전압 저하가 조명의 깜빡임 정도로 지나갈 수 있지만, 최첨단 반도체 팹에서는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웨이퍼는 수백 단계의 공정을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 통과한다. 진공 속에서 원자 단위의 막을 쌓고 깎는 과정에서 전압 저하가 장비와 보호설비의 대응 범위를 벗어나면 공정이 멈출 수 있다. 가공 중이던 웨이퍼가 불량으로 버려지면, 그간 들인 시간과 비용도 함께 사라진다. 반도체 업계에 장비가 어느 정도의 전압 저하를 얼마 동안 견뎌야 하는지 정한 산업표준 SEMI F47이 따로 있는 이유다.
팹이 요구하는 전기는 ‘대체로 잘 들어오는’ 전기가 아니다. 선로나 변전설비의 고장이 곧바로 생산 중단으로 번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전기다. 이를 위해서는 고장 시 대체할 수 있는 복수의 공급경로, 설비 한 곳이 빠져도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 두 경로가 같은 원인으로 동시에 끊기지 않도록 하는 배치가 필요하다. 순간적인 전압 변동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중요하다. 공장 안의 무정전 전원장치와 전력품질 보상설비, 바깥 전력망이 각각 어디까지 담당할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현재 공개된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호남반도체의 공급 규모와 일정, 연결 방안까지다. 고장과 전압 저하에 대비한 설계 수준은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같은 1킬로와트시라도 의미는 다르다
여기에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붙는다. 그 전기가 어떤 전기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사용하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TSMC는 100퍼센트 재생전기 전환 시점을 2040년으로 잡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요 발전원인 핵발전은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전원이지만 RE100에서는 재생에너지로 인정되지 않는다.
기업 전력조달의 기준이 재생에너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며, 전기소비를 매시간 무탄소전기와 맞추려는 24/7 무탄소에너지(CFE)라는 흐름도 확산하고 있다. 이 기준에서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핵발전도 무탄소전원으로 인정한다. 무탄소로 인정되는 전기를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서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를 중시하는 접근이다.
팹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과 함께 기업이 재생전기 또는 무탄소전기를 어떤 기준으로 조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RE100에 대응하려면 장기 전력구매계약이나 재생에너지 인증서 등을 통해 재생전기 사용실적을 확보해야 한다. 한편 24/7 CFE와 같은 기준에서는 전기소비와 무탄소전기 생산을 시간 단위로 맞추는 것이 중요해진다. 기업 전력조달과 탄소회계의 국제적 기준과 논의도 연간 사용량을 맞추는 데서 시간과 장소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력 공급계획 다음의 질문
호남반도체의 전력 공급계획은 규모와 경로, 일정이 구체화됐고 송전망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이제 쟁점은 공급계획 자체를 넘어, 계획한 전력이 필요한 시점에 충분한 양과 품질로 실제 공급될 수 있는지, 동시에 기업이 요구하는 재생전기와 무탄소전기 조달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다.
호남반도체 전력의 최종 공급 목표는 6.3기가와트다. 그러나 미래 팹의 경쟁력을 가르는 것은 그 숫자만이 아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멎은 밤, 선로 하나를 잃어도 끊기지 않는 전력과 글로벌 공급망이 요구하는 무탄소전기를 확보하는 일이 아닐까.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IT 동아]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것은 끊기지 않는 전기다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2 출처=전남대학교](https://it.donga.com/media/__sized__/images/2026/9/29/789d1962445a4ee8-thumbnail-1920x1080-70.jpg)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을 받아 해당 분야의 세계적 연구기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에너지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3년 연속 스탠퍼드대학교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선정되었으며,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기후·에너지 솔루션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환경보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6년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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