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자동차와 法]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과 연관된 사고 사례와 판례
2026년 09월 23일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IT 동아] [자동차와 法]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과 연관된 사고 사례와 판례 1 출처=엔바토엘리먼츠](https://it.donga.com/media/__sized__/images/2026/9/22/beedf28675db46e8-thumbnail-1920x1080-70.jpg)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켜 둔 상태였습니다. 억울합니다.”
요즘 교통사고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기계가 운전을 거들었으니 책임도 나눠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기대가 담긴 말입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실제로 어떻게 판단해 왔을까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이 얽힌 사고 관련 판결문들을 읽어 보면 결론은 한결같고, 그 근거는 뜻밖에 단순합니다. ‘보조’라는 두 글자입니다.
세 가지 변명, 하나의 답
법정에 오른 변명은 세 갈래였습니다.
첫째는 졸음입니다. 스마트 크루즈로 시속 80km를 유지하다 졸음운전으로 도로공사 작업자를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1심은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스마트 크루즈를 쓴다고 주의의무가 줄지 않는데도 졸음을 피할 노력 없이 만연히 운전했다며, 징역 1년 실형으로 형을 바꿨습니다(수원지방법원 2022노1046 판결).
둘째는 신뢰입니다. ‘자율주행 기능’을 믿고 달리다 중앙선을 넘었다는 운전자에게 재판부는 각주 하나를 달았습니다. 그가 말한 자율주행은 스마트 크루즈로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은 주행보조기능을 사용한다고 해서 운전자의 주의의무가 경감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습니다(의정부지방법원 2025노1101 판결).
셋째는 무지입니다. 제한속도 70km 국도에서 스마트 크루즈를 시속 108km 안팎에 맞춰 달리다 신호대기 중인 트럭을 들이받은 운전자는 해당 기능이 정차 차량을 알아보지 못하는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법원의 답은 “자동차의 기능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이를 사용한 것 자체가 엄연한 잘못”이라는 것(대전지방법원 2025노4414 판결)이었습니다. 모른다는 말은 감경 사유가 아니라 가중 사유가 됐습니다.
이 판결들이 가혹해 보일 수 있지만 근거는 기술 안에 있습니다. 스마트 크루즈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우선권을 넘기도록 설계돼 있고, 법원은 그 설계를 책임의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보조’라는 말이 운전자에게만 무거워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같은 두 글자가 반대편에서는 방패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팔 때는 자율주행에 가까운 이름을 붙이고, 사고가 나면 설명서 구석의 ‘보조’를 꺼내 드는 관행이 그것입니다. 다행히 저울이 반대로 기운 판결들도 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작업차량 추돌 사망 사고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망인 차량의 스마트 크루즈와 충돌방지 기능이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을 오히려 정차 차량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사정으로 보아 도로공사에 30%의 책임을 물렸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5나204206 판결).
차선유지보조가 해제될 때 5초 이상 울려야 할 경고음이 1초만 울린 차량 5만6,000여 대에 부과된 18억 원대 과징금은 제조사의 취소 청구에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5구합53098 판결). 네 차례 수리에도 스마트 크루즈가 먹통이던 신차에 대해서는 중대한 하자로 인정, 차값 전액이 반환됐습니다.
해외에서는 미국 플로리다 배심이 지난해 오토파일럿 사망 사고에서 제조사에 33%의 책임과 2억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물렸고, 캘리포니아 당국은 ‘오토파일럿’이라는 이름 자체를 기만 광고로 판단했습니다. 이름이 오해를 만들고, 오해가 사고를 만듭니다.
이 판결들은 보조장치의 한계를 운전자 아닌 쪽의 의무로도 읽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법원이 운전자에게 설명서를 숙지할 의무를 지운다면, 제조사에게는 보조장치의 한계를 제대로 알릴 의무를 부과해야 합니다.
마치며
자율주행으로 나아가는 과도기, 첨단 기술은 운전자의 손발을 자유롭게 하지만, 법적 책임까지 덜어주지는 않습니다. 법원은 기계에 대한 맹신을 감경 사유로 인정하지 않으며, 사고의 최종 책임은 언제나 운전대를 쥔 사람에게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무거운 짐을 운전자 홀로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화려한 이름으로 맹신을 부추기고, 사고 앞에서는 매뉴얼 속 ‘보조’라는 단어 뒤로 숨는 제조사의 관행도 바뀌어야 합니다.
‘보조’라는 두 글자가 운전자에게 방심을 막는 경고문이라면, 제조사에게는 시스템의 한계를 명확히 알릴 무거운 의무로 똑같이 작동해야 합니다. 완전한 자율주행 시대가 오기 전까지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는 운전자의 깨어있는 두 눈과 제조사의 책임감 있는 자세입니다.
![[IT 동아] [자동차와 法]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과 연관된 사고 사례와 판례 2 89dac5e130cd4f4d thumbnail 1920x1080 70](https://it.donga.com/media/__sized__/images/2026/9/22/89dac5e130cd4f4d-thumbnail-1920x1080-70.jpg)
글 /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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