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동아] 피지컬 AI 강국 도약 선언한 대한민국, 목표 달성하려면 앞서간 국가의 사례들에 주목해야

피지컬 AI는 현실(물리) 환경과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구조로 고품질 학습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 / 출처=현대자동차그룹
피지컬 AI는 현실(물리) 환경과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구조로 고품질 학습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 / 출처=현대자동차그룹

[IT동아 강형석 기자] 실물 인공지능이라 부르는 피지컬 AI(Physical AI)는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를 뜻하며, 로봇이나 자율주행·비행장비 같은 무인화 장비가 대표적인 예다. 실제 현장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AI인 셈이다. 이런 피지컬 AI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미래 기술이라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 산업 역량과 지속 성장 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피지컬 AI 기술을 구체화하려면 AI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외에도 제조업과 소재 산업 등 국가 단위 인프라와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장조사기업 SNS 인사이더는 전 세계 피지컬 AI 시장이 2025년 52억 3000만 달러(약 7조 6546억 원)에서 2035년 874억 3000만 달러(약 128조 325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현실 세계의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이 전체 생태계의 45% 이상을 차지하며 성장을 주도하고, 하드웨어 기기의 실시간 의사결정을 돕는 강화학습 및 제어 시스템이 뒤따를 것이라는 게 근거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피지컬 AI를 국가의 주요 전략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에 돌입했다. 경영전략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공개한 ‘거대한 분열: 미·중이 갈라놓는 AI 세상(The Great Divide: How the US and China Are Splitting the AI World)’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막대한 자본력과 최상위권 인재풀, 컴퓨팅 인프라를 앞세워 프런티어 AI 모델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의 컴퓨팅 격차를 빠르게 추격하는 동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 공급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실물 경제에 신속하게 이식하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하며 자체 피지컬 AI 생태계를 완성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시작된 AI 패권 경쟁이 이제 물리적 기계와 맞물리며 새로운 국면으로 번진 셈이다.
메가프로젝트 피지컬 AI 부문은 3M 전략으로 접근, 2030년까지 글로벌 1강을 목표로 한다 / 출처=대한민국 청와대
메가프로젝트 피지컬 AI 부문은 3M 전략으로 접근, 2030년까지 글로벌 1강을 목표로 한다 / 출처=대한민국 청와대
우리나라도 피지컬 AI를 산업과 일상 전반에 대변혁을 몰고 올 핵심 산업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정책을 통해 관련 산업 육성에도 나선 상태다. 아직 표준화와 기술 완성도가 여물지 않은 지금을 AI 로봇 강국으로 도약할 승부처로 본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피지컬 AI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소프트웨어 융합 역량에서는 상대적으로 열세다. 피지컬 AI 기술이 고도화될 시점에 기술 강대국 사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글로벌 기술 표준을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보완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강력한 AI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인프라로 대응하는 미국

미국의 피지컬 AI 산업 생태계는 거대한 투자 규모와 최고 수준의 기초 과학 역량에서 비롯된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2026년 발간한 ‘미·중의 AI 패권 경쟁 전략(Competing AI strategies for the US and China)’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수천억 달러 수준에 달한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 한 기업만 하더라도 2025년 한 해 동안 AI 설비 투자에 약 8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알파벳, 아마존, 메타를 포함한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전체 투자 규모는 65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천문학적인 자본은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 같은 기업들이 고도화된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검증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된다. 하드웨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두뇌 역할을 맡는 알고리듬 분야에서, 미국은 경쟁국이 좀처럼 좁히기 힘든 격차를 유지 중이다.
미국 정부의 정책적 접근 방식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과거의 기술 지원 정책이 연구개발(R&D)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에 머물렀다면, 현재 미국 연방 정부는 스스로 ‘첫 소비자(First Buyer)’로 나서 시장의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2025년 미국 연방총무청(GSA)이 전 부처를 대상으로 구글 제미나이(Gemini), 챗GPT(ChatGPT), 클로드(Claude) 등 자국 AI 모델을 도입하는 대규모 조달 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가 기관이 앞장서서 혁신 기술을 구매해 주면서, 신생 스타트업과 기술 기업들은 초기 매출처와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피지컬 AI 솔루션을 고도화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공공 부문이 기술 혁신의 테스트베드이자 후원자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탄탄한 AI 인프라와 기술, 정부의 규제 개정 등을 앞세워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한다 / 출처=백악관 홈페이지
미국은 탄탄한 AI 인프라와 기술, 정부의 규제 개정 등을 앞세워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한다 / 출처=백악관 홈페이지
법적·제도적 규제 변화는 미국 피지컬 AI 산업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촉매제다. 2026년 2월 미국 의회를 통해 발의된 ‘자율주행 법안(SELF DRIVE Act of 2026, H.R. 7390)’은 새로운 규제 기준을 정립한 사례로 꼽힌다. 과거의 자동차 안전 규제가 정부가 정해둔 획일화된 체크리스트를 통과해야만 허가를 내주는 방식이었다면, 새롭게 개정된 법안은 기업 스스로 자사 시스템의 안전성에 대한 구조화된 논증과 실증 데이터를 담은 ‘안전 사례(Safety Case)’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입증 책임의 수준을 높여, 유연한 기술 혁신을 유도하는 규제 방식인 셈이다.
해당 법안은 기존 연방 자동차 안전 표준(FMVSS)이 강제하던 수동 조향 장치 탑재 의무를 과감히 삭제하고, 무인 배송 로봇을 정식 자동차의 범주로 편입시키는 등 실질적인 상용화의 걸림돌을 걷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아울러 주 정부마다 제각각이던 자율주행 이동체 안전 기준의 난립을 막고, 모든 사고와 운행 데이터를 도로교통안전국(NHTSA)으로 집중시켜 연방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외부 기술에 대한 견제 장치도 마련했다. ‘휴머노이드 법안(Humanoid ROBOT Acts, S.3275)’은 로보틱스 분야 안보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2025년 11월 발의됐다. 이 법안은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모든 기업이 위험국가(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에서 설계·제조·평가된 AI 탑재 휴머노이드 로봇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

강력한 제조 역량과 정부 정책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미국이 AI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인프라로 톱다운(Top-down) 방식의 혁신을 주도한다면,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탄탄한 제조 인프라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무기로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생태계를 구축했다. 중국은 기계 지능과 현실 세계의 결합·연결·협력을 통해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복지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의 피지컬 AI 정책은 최상위 AI 프런티어 기업 육성에 그치지 않는다. 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로봇 등 일상 속 모든 하드웨어 기기를 지능형 단말기로 바꿔 ‘AI 메이드 인 차이나(AI Made in China)’ 생태계를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을 보면, 국가 근대화 산업 시스템의 정중앙에 로봇 공학을 배치했다. 산업용 자동화 설비부터 AI와 결합된 하이엔드 지능형 로봇 개발까지 최우선 경제 성장 동력으로 명시한 것이다. 공업정보화부(MIIT) 주도로 수립된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 발전 지도의견’ 등 수천 개의 하위 부문 지침이 이 목표를 향해 국가 전체의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제 속에서도 피지컬 AI 산업 증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출처=유니트리
중국은 미국의 제제 속에서도 피지컬 AI 산업 증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출처=유니트리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미국발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라는 치명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중국이 끈질기게 생태계 자립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중국 내 AI 반도체 시장에서 자국산 칩의 점유율이 41%에 육박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화웨이(Huawei) 같은 토종 기업이 공급하며, 하드웨어 제재의 파고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중이다. 구글이나 메타가 보유한 최상위 프런티어 모델의 추론 능력에는 다소 못 미치더라도, 중국 기업들은 풍부한 부품 공급망을 발판 삼아 피지컬 AI 인프라를 구축하며 난관을 헤쳐 나간다.
미국 정부가 투자 분위기를 조성해 기업을 지원한다면, 중국은 국가 보조금을 활용한다. 최신 AI 단말기나 스마트 기기를 구매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이구환신(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꿈)’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내수 소비를 이끄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은 정부 지원금 덕분에 최첨단 로봇 청소기나 자율주행 전기차를 저렴하게 구매하고, 이 과정에서 쌓이는 방대한 일상 데이터는 다시 중국 기업들의 피지컬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자양분으로 쓰인다. 부품 제조와 알고리듬 학습, 소비자 구매가 맞물려 자급자족형 선순환 생태계를 완성한 셈이다.

강대국 틈에 낀 대한민국 피지컬 AI 산업, 성장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전략을 보면 상반된 경로를 택했음에도 각자 피지컬 AI 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모습이다. 공통점은 초기 수요를 국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미국은 연방 정부의 조달 예산을 통해 빅테크 기업들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고, 중국은 내수 소비 기반 시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피지컬 AI 생태계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대한민국도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피지컬 AI 산업 부흥에 나선다. 제조업 AI 전환(M.AX), 핵심기술 확보(Master), 양산체계 구축(Mass Production)을 담은 ‘3M 전략’을 내놓았다. 이 세 가지 과제를 빠르게 실행해 2030년까지 AI 로봇 글로벌 3강, 피지컬 AI 부문 글로벌 1강 진입을 노린다. 2028년까지 10대 산업 특화 휴머노이드를 상용화하고, 국내 시장 점유율을 1%에서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피지컬 AI 학습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국산화는 해결해야 될 과제 중 하나다 / 출처=엔비디아
피지컬 AI 학습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국산화는 해결해야 될 과제 중 하나다 / 출처=엔비디아
정부 계획은 한국이 가진 자동차 부품, 가전 부품, 정밀기계, 모터, 감속기, 센서 등 기존 제조 기반 산업을 로봇 부품 생태계로 재구성해 확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업과 인프라를 보유해, 미국이나 중국 못지않은 제조업 기반형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 잠재력을 갖췄다.
시급한 과제는 빠르고 유연한 규제 프리존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하는 일이다. 미국이 자율주행 및 AI 규제를 개선해 혁신을 유도했듯, 우리나라도 의료·교육·돌봄·첨단 제조 현장에서 피지컬 AI가 자유롭게 개발되고 쓰일 수 있도록 규제를 다듬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국산 피지컬 AI 솔루션을 도입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역할을 맡아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민간 기업에 레퍼런스(도입 사례)를 제공하는 조력자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초기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로봇 구매를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국방·재난대응 등 로봇이 필요한 부처를 중심으로 제품과 기술을 구매하고, 국민성장펀드로 마련된 재원을 활용해 피지컬 AI 신증설 투자자금 지원도 이뤄진다.
반도체 강국이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에서 세계적인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강점을 살릴 하이브리드 전략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피지컬 AI 학습 데이터 구축 인프라가 중요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20조 원을 투자해 국가 제조 데이터 라이브러리 구축, 제조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등을 신속하게 추진할 예정이다.
피지컬 AI용 엣지 장비인 엔비디아 젯슨 플랫폼 / 출처=엔비디아
피지컬 AI용 엣지 장비인 엔비디아 젯슨 플랫폼 / 출처=엔비디아
피지컬 AI는 물리적 힘과 마찰, 실패와 충돌까지 아우르는 복합 상호작용 데이터가 관건이다. 고품질 데이터 구축과 활용이 곧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국산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 확보가 절실하지만, 속도전으로 풀릴 문제는 아니다. 데이터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피지컬 AI 데이터 인프라가 산업에 안착하려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또는 실제 상호작용 데이터를 가공해 표준화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정부는 10대 업종별 데이터 팩토리를 세워 AI 로봇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활용해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방침이지만, 데이터 팩토리를 언제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부족하다.
피지컬 AI에 탑재할 엣지 기기(자체 연산 장비)의 국산화도 과제로 남는다. 미국은 엔비디아 외에도 빅테크 기업 중심의 피지컬 AI 엣지 기기가 보편적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역시 피지컬 AI용 엣지 장비로 엔비디아 젯슨(Jetson), 아이작(Isaac) 플랫폼이 주로 활용된다. 휴머노이드·로봇 부품을 국산화해도 정작 피지컬 AI의 핵심인 두뇌와 소프트웨어가 외산이라면, 특정 기업 플랫폼에 종속될 위험을 안게 된다.
글로벌 피지컬 AI 패권 경쟁의 승패는 기술 개발과 활용 능력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제도적 뒷받침과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대한민국이 확보한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역동적인 기술 수용성을 발판 삼아 정부와 기업이 탄탄한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미국과 중국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의 룰 메이커로 도약할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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