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美서 일하다 끌려간 한국인 300명, 트럼프 행정부에 ‘조지아 구금 손배청구’ 시작

지난해 12월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단속 현장. 사진=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 로이터
지난해 12월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단속 현장. 사진=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 로이터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공장에서 이민당국의 대규모 단속으로 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CNN은 15일(현지시간)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를 인용해 국토안보부(DHS), 이민세관단속국(ICE), 세관국경보호국(CBP), 연방수사국(FBI), 법무부, 노동부 등 9개 연방기관을 상대로 행정상 손해배상 청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행정상 청구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전 거쳐야 하는 절차다. 노동자 측 변호사는 첫 번째 청구 서류가 이미 관계 기관에 발송됐으며 연말까지 전체 청구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해 9월 4일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에서 발생했다. 당시 연방·주·지역 당국 인력 약 500명이 현장에 투입돼 475명을 체포했고, 상당수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국내에도 대대적인 보도가 이뤄졌다.

CNN이 확보한 수색영장에 따르면 당시 이민당국이 지목한 수사 대상자는 4명이었으며 한국인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구금 노동자들은 별다른 설명이나 통역 없이 체포됐고, 수갑과 족쇄를 찬 채 이해하지 못하는 서류에 서명하도록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과밀한 시설에 구금됐다고 밝혔다.

첫 청구서를 제출한 김모씨는 ICE 시설에 7일간 불법적으로 구금됐으며 비인도적인 생활환경에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압수된 소지품과 근로 손실,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측 변호사는 이번 청구의 목적이 미국 정부의 실수 인정과 사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설비 설치를 위해 합법적으로 입국한 기술자들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워 범죄자처럼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 국토안보부는 ICE가 불법 고용 관행과 기타 연방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의 일환으로 사법부가 발부한 수색영장을 집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관국경보호국도 당시 체포된 이들이 비자 또는 체류 자격 조건을 위반해 불법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CNN과 인터뷰한 구금 노동자 4명은 모두 유효한 비자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체포 당시 이유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가명으로 인터뷰한 류씨는 “구금된 이후에도 왜 잡혀왔는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단속 당시 한국어 통역 없이 수시간 동안 억류됐으며 읽을 수 없는 문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이후 손목과 발목에 수갑과 족쇄를 찬 채 조지아주 포크스턴 구금시설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구금 초기 남성 최대 80명이 한 공간에 수용됐고 화장실은 몇 개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실내는 매우 추웠으며 음식과 물 상태도 좋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후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자진출국 동의서를 제시했으나 이 과정에서도 충분한 설명이나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게 노동자 측 주장이다.

이번 청구는 연방불법행위청구법(FTCA)에 따라 제기됐다. 국토안보부가 청구를 받은 뒤 6개월 안에 답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사건 이후 일부 한국인 노동자들은 같은 비자를 이용해 다시 미국에 입국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조지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에는 현대차 전기차 생산시설과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이 들어서 있다. 구금된 한국인 상당수는 당시 건설 중이던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미국 내 첨단 제조시설을 건설하고 초기 가동하는 과정에서 해외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행 비자 제도가 이 같은 단기 기술 인력 파견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노동자들은 과거에도 B-1 상용비자로 미국 내 다른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했다고 밝혔다. B-1 비자는 교육이나 장비 설치 등의 활동은 허용하지만 생산 업무나 미국 기업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은 제한한다.

김씨는 조지아 공장에서도 관련 규정을 준수했으며 임금을 원화로 받고 미국인 노동자들을 교육했다고 주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법규 준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공장이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때까지 전문가를 일시적으로 파견한다고 밝혔다.

단속 이후 미국으로 출국하는 일부 노동자들은 다시 이민 단속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비자 종류와 고용주, 담당 업무 등이 적힌 회사 발급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예전에는 미국을 강대국이자 부유한 나라, 동맹국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이미지가 크게 무너졌다”고 지난해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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